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 로셀라 포스토리노 지음, 김지우 옮김/문예출판사 |
이 책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만든 것은 바로 ‘평범함’이다. 책에서는 두 가지 평범함과 하나의 악이 등장한다. 하나는 시대의 격류에 쓸려가는 힘없는 인간의 평범함, 다른 하나는 한나 아렌트가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에게서 발견한 악의 평범성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악’이라 부르기 충분한 일을 스스로 자행하는 이들이 있다.
《히틀러의 음식을 먹은 여자들》은 이 세 가지 요소가 잘 묘사된 역사소설이자, 평범한 인간인 로자가 ‘스스로 악을 행하는 자’와 ‘악의 없이 악한 임무를 수행하는 인간’의 틈바구니에서 생존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생존소설이다. 실제로 이 소설은 히틀러의 음식을 시식했던 실존 인물이자 유일한 생존자 마고 뵐크(Margot Wölk)의 인터뷰를 계기로 쓰인 책으로, 마고 뵐크는 70년 간 비밀로 간직했던 이야기를 공개하면서 식사 후에는 살았다는 기쁨에 ‘개처럼’ 울어야 했다고 말했다.
마고 뵐크는 전쟁이 끝난 후 평화를 얻지도 못했다. 같이 히틀러의 음식을 감식했던 여자들은 모두 처형당했고, 그녀는 독일 장교의 도움으로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으나, 소련군에게 잡혀 14일 간 성폭행을 당했다.
우리가 실존 인물 마고 뵐크이고 소설의 주인공 로자라면,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히틀러가 시킨 일을 하면 음식을 먹다 죽고, 히틀러를 추종해도 전쟁 종결 후엔 나치 추종자란 명목으로 죽어야 한다. 히틀러에 반대하면 그 역시 죽어야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주인공 로자는 삶의 커다란 모순을 경험한다. 내가 살기 위한 일이 어떻게 모두 내가 죽기 위한 일이 될 수 있을까. 시대의 격류에 휩쓸려 스스로 자신의 생존을 결정할 수 없는 평범한 삶을 산 로자. 지금 이 시대에는 로자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