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거짓된 삶



어른들의 거짓된 삶10점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한길사

 

잔혹한 사춘기를 다룬
가장 엘레나 페란테다운 소설

『어른들의 거짓된 삶』은 화자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충격적인 이야기를 폭로하며 시작한다. 나폴리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13세 소녀 조반나는 어느 날 부모님의 대화를 엿듣다가 자신이 아버지의 여동생이자 추함과 사악함의 대명사인 빅토리아 고모와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조반나는 자신이 못생기고 말랐다는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하루 종일 거울을 들여다보고 친구들에게 외모를 평가해달라고 한다.

조반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사진 앨범을 뒤져 고모의 흔적을 찾지만 끝내 실패하고 만다. 조반나는 부모님이 꺼리는 고모를 찾아가 자신이 정말로 고모를 닮았는지 확인한다. 조반나는 아름답지만 “뭔가 거슬리는 면이 있어서 차라리 단순하게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은 고모의 거친 모습에 매력을 느낀다.

조반나는 겉모습 뒤에 가려진 진짜 모습을 보아야 한다며 부모님을 잘 관찰하라는 고모의 충고를 따라 점차 부모님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와 친형제처럼 지내는 마리아노 아저씨가 다리로 어머니의 발목을 식탁 아래서 감싸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큰 충격에 빠진다. 조반나는 자신이 완전하다고 생각했던 세계에 균열을 느끼며 위선으로 가득한 어른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어른들의 거짓된 삶』은 일반적인 성장소설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구조로 짜여 있다. 조반나가 또 다른 세계를 마주하게 된 계기는 그녀가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신뢰했던 아버지의 충격적인 발언 때문이다.

아버지 안드레아와 어머니 넬라의 갈등으로 조반나의 가족은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고 조반나는 점차 가족의 비극을 인식하면서 불안과 공포, 환멸을 경험한다. 가족의 붕괴와 아버지의 빈자리를 통해 조반나가 느끼는 감정은 단순히 부모님을 향한 원망이 아니다.



처음에는 마리아노 아저씨와 어머니 사이를 의심하면서 어머니에게도 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폴리 윗동네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가버린 아버지를 향한 비난으로 이어지다 결국에는 아버지에게 비참할 정도로 매달리는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겪는다.

조반나가 어른들의 허영과 위선을 파헤치며 더욱더 이중적인 행동을 하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반항심으로 가득한 사춘기 소녀 조반나는 부모님을 관찰하던 도중 아버지가 나폴리 ‘윗동네’에 살면서 ‘아랫동네’에 속하는 자신의 근본을 지우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조반나는 아버지가 그어놓은 경계에서 인위적인 면을 발견하고 아버지가 구축한 질서를 붕괴해 위아래를 뒤섞어놓는다. 그 과정에서 조반나는 아름다움과 추함, 새로움과 낡음, 섬세함과 투박함이 뒤섞인 혼합의 장이 된다. 조반나는 그런 식으로 신지식인인 아버지의 위선을 보란 듯이 조롱한다.

이처럼 페란테는 상실을 통해 한발 더 성장하고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입체적인 인물을 보여준다. 인물의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모습이 아니라 여러 사건을 거쳐 성장하는 인물의 치밀한 심리 묘사를 통해 일반적인 성장소설 속 인물에서 한발 더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조반나가 악으로 대변되는 고모를 만나 그녀의 삶을 자신의 삶 속으로 끌어들이는 모습 또한 매력적인 요소다. 우리는 페란테가 폭력적인 체험을 온몸으로 흡수하고 악을 받아들이는 독특한 인물을 형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페란테는 그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천재 소녀 릴라와 그런 릴라를 이기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레누를 넘어서 조반나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했다. 페란테는 조반나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들며 세상에서 가장 잔혹하고 강렬한 사춘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폴리라는 도시의 여러 모습을 그린 한 폭의 벽화 같기도 한 이 소설은 불안으로 점철되어 있는 우리 시대를 대변하는 주제들과 일그러진 여성의 모습을 통해 여성 서사의 새로운 중심이 되고 있다. 아름다운 도시 나폴리를 배경으로 악에 받친 인물들이 소리를 지르며 잔혹한 방법으로 성장하는 『어른들의 거짓된 삶』은 페란테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페란테다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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