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온난화 – 찰스 아서 지음, 이승연 옮김/위즈덤하우스 |
소셜온난화, 돈 버는 사람 따로 있고 대가를 치르는 사람 따로 있는 불공평한 재난
이제 ‘고장 난 도구를 재설계하고 개조’해야 할 때!
이 책의 추천사를 쓴 디지털 칼럼니스트 박상현은 이 모든 흐름을 ‘소셜온난화’라 부른 것은 아주 적절하면서도 영리한 명명(命名)이라 평하면서 지구온난화와 소셜온난화의 공통점을 조목조목 설명한다.
두 개의 온난화 모두 단순한 오염 혹은 현상에서 끝나지 않으며 되돌리기 힘든 재난이 되어가고 있다. 전 세계에서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듯 보이지만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또한 정작 온난화에 덜 기여한 가난한 나라들이 더 큰 피해를 입고 있다는 특징도 있다. “돈 버는 사람 따로 있고, 대가를 치르는 사람 따로 있는 불공평한 재난”인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선진국이 안전지대라고 장담할 수 없으며, 몇 년 후에는 선진국도 두 개의 온난화의 영향으로 각종 위협에 적나라하게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매일 약 18억 명이 페이스북에 로그인한다.
인스타그램과 왓츠앱 사용자까지 더하면 한 달에 총 사용자 수는 중복을 제외하고도 30억 명 이상이다. 트위터에는 매일 전 세계에서 1억 9000만 명이 접속한다.
유튜브에서는 매일 약 50억 편의 동영상이 시청되며 한 달 동안 20억 명 이상이 그 사이트를 방문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모바일 앱인 카카오톡 월간 사용자 수는 4500만 명이 넘는다.)
이 수많은 사용자들의 힘으로 테크 대기업들은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데 성공했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 즉 소셜온난화는 외면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애플의 매킨토시 프로젝트의 초기 구성원이자 스티브 잡스의 고문이었던 조애나 호프먼이 한 말은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아시다시피, 이건 담배 같은 거예요.
아편과 다를 게 없어요. 우리는 분노에 중독성이 있다는 걸 알고, 사람들을 충분히 열받게 만들면 우리 플랫폼에 끌어와서 참여하게 할 수 있다는 걸 압니다.
(중략) 제가 묻고 싶은 건 이겁니다. 얼마나 엉망이고, 얼마나 무지하고, 얼마나 기만적인 건가요?”
물론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가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다만 이대로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소셜온난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지금 무엇을 해볼 수 있을지 논의하기 시작해야 한다. 저자는 소셜네트워크의 규모를 무제한으로 늘리려는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의 행보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갖고 있는 테크 대기업들에 규제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기업들은 ‘위험한’ 광고나 콘텐츠를 걸러내는 알고리듬을 개발해서 (추가 고용 없이) 문제를 손쉽게 해결하려 할 것이 아니라 엄격하고 윤리적인 가이드라인을 숙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고용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사람들의 경쟁 심리와 말초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각종 ‘숫자 표시’ 기능을 덜 써야 한다고 제언한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고장 난 도구를 재설계하고 개조”해야 한다. 이 책은 우리 모두에게 경종을 울리고 행동을 촉구하며 이렇게 호소한다. ‘눈을 뜨라’, ‘깨어 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