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학기 제3세계의역사와문화 중간시험과제물 공통(크랙업 캐피털리즘)
해당 자료는 해피레포트에서 유료결제 후 열람이 가능합니다.
분량 : 9 페이지 /zip 파일설명 :
퀸 슬로보디언, 『크랙업 캐피털리즘』(arte, 2024)
– 목 차 –
I. 크랙업 캐피털리즘 내용 요약
II. 자신의 의견
참고문헌
I. 크랙업 캐피털리즘 내용 요약
1. 제1부 섬들
홍콩의 기원으로, 이상적인 국가가 어떻게 총구에서 만들어졌는지를 말해준다.
영국은 1842년 난징조약으로 제1차 아편전쟁의 전리품으로 홍콩 섬을 영구적으로 주장했다.
중생대 초화산 폭발로 인해 남겨진 산이 태풍으로부터 보호하는 깊고 넓은 항구를 갖춘 도시는 빅토리아로 명명되었다.
군주 이후에는 마약 거래, 즉 인도에서 재배 및 가공되어 중국 소비자에게 배송되는 아편을 통한 무역으로 인해 관세가 면제되는 무역로로 변모했다.
홍콩은 새로운 법적 환경에서 번영을 누렸다. 무역항으로 시작한 이곳은 1949년 공산주의 적군의 승리로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어 곳곳에 생겨나는 작은 작업장과 공장으로 유입된 이후 세계 시장을 위한 제조업으로 가속화되었다.
영국이 1945년 일본으로부터 식민지를 탈환했을 때 식민지의 전체 인구보다 많은 약 백만 명의 난민과 이주자들이 특히 상업 중심지인 상하이에서 노동력과 자본을 가져왔다.
신자유주의 그룹 내에는 다양한 사상가들이 있었지만 대중민주주의 시대에는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그들은 하나로 뭉쳤다.
몇 가지 주요 사상가 그룹이 있었다. 자유주의에는 많은 학파와 경향이 포함되어 있지만 국가의 역할은 재산을 소유하고, 자원을 관리하고, 회사를 지휘하거나 의료, 주택, 유틸리티 또는 인프라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하나로 뭉쳐 있다.
대내외 안보유지, 사유재산 보호, 계약의 신성함 등이 정부의 주요 역할이 되어야 한다
영국의 경우, 자신의 식민지 중 하나가 모국에 자본주의에 대해 가르칠 무언가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삼키는 것은 쓰라린 약이었다.
그러나 제조 중심지이자 역외 금융 서비스 중심지로서 홍콩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70년대 후반에 홍콩은 연간 GDP 성장률이 16.9%에 달했고 영국의 GDP 성장률도 최고치를 기록했다.
4%였고 심지어 몇 년 후에 마이너스가 되기도 했다. 구역은 사회주의의 심장을 노리는 단검이었을지 모르지만 투쟁 없이 사회주의가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가장 강력한 반대는 1981년 좌파 노동당 정치인 켄 리빙스턴(Ken Livingstone)이 당선된 후 런던 사회주의 비전의 기수가 된 시 정부인 그레이터 런던 의회(GLC)에서 나왔다.
대처 정부가 경제 상황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극동의 용, GLC의 “신도시 좌파”는 다른 종류의 국제주의를 실천했다.
싱가포르는 어떤 면에서 보아도 특이한 곳이다.
중세시대에 전성기를 누린 도시국가이다.
그 크기는 그레이터 런던과 비슷하거나 중국 전체 면적의 0.1%도 안 된다.
하지만 UN에 의석을 두고 완전히 독립된 국가이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신자유주의 경제 자유 지수의 선두에 함께 자리잡고 있으며 멀리서 보면 쌍둥이처럼 보일 수 있지만 동일하지는 않다.
홍콩과 달리 싱가포르는 1959년부터 자치권을 누렸고 1965년부터 완전한 국가 주권을 누렸다.
2. 제2부 부족들
반투스탄인들이 다른 어떤 국가도 인정하지 않는 유사 독립 국가로 만들기까지 했다.
명목상의 독립을 최초로 얻은 나라는 이스턴케이프의 트란스케이 공화국이었다.
탈식민지화의 무언극으로 진행된 행사에는 새 국가 원수의 연설과 새로 건설된 경기장에서 소수의 군중에게 101발의 예포가 거행되었다.
참석한 유일한 외국 고위 인사는 우루과이 군사 독재 정권의 장군이자 민주주의가 없는 서던 콘(Southern Cone)의 자본주의 버전에서 파견된 사절이었다. 트란스케이(Transkei)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자유민주주의를 따르고 있음을 증명하려는 노력으로 만들어진 4개의 가짜 국가 중 첫 번째였다.
무정부주의-자본주의 사회가 반드시 각 사람이 자신에 대해 무력을 행사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는 한 자신과 자신의 재산을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사회는 아닐 것이라고 인정했다.
법과 질서를 사유화하면 개인의 자유가 더 많이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했다. 미국 서부의 주민들은 이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최근 과거만 살펴보면 된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미국에는 수백 개의 회사 도시가 산재해 있었다. 개인이 건설하고 소유한 이곳은 가부장적 통치의 영토였다.
집은 회사에서 짓고, 외관과 색상은 사장이 정했다. 상점 역시 회사 소유였으며 직원들은 때때로 그곳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스크립”으로 급여를 받았다.
인종과 민족이 분리되어 생활하는 사회학적 연방주의가 당시의 질서였다.
술을 자주 금지하고 노조 가입이나 노동 활동을 거의 보편적으로 금지하는 등 행동이 통제되었다. 파업으로 인해 해고되고 지역사회에서 추방되었다.
– 중략 –
출처 : 해피레포트 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