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유배 속에서 만들어진 위대한 업적
정약용을 아끼던 정조가 승하한 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은 천주교도라는 죄목으로 유배 길에 오르게 되며 정약용은 강진으로, 그의 형인 정약전은 흑산도로 쫓겨났다.
다산이 쓴 기록에 따르면 귀양살이에 도착해서 든 생각이 ‘내가 벼슬에 있으면서 정치적 반대파들하고 싸우느라고 아무것도 못 했는데 이제 나는 온종일 내가 내 마음대로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겨를을 얻었다’는 것이었다.
다산의 형인 소남 정약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 생물학서, <자산어보>의 저자로 흑산도 유배 시절 236종에 달하는 해양생물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정약용은 유배 기간 동안 조선 후기 음악 이론과 악기 기록을 고증한 음악 이론서인<악서고존>, 우리나라 강역에 관한 역사 지리서인<아방강역고>, 행정 기구 및 토지 제도, 부세 제도 등 모든 제도의 개혁 원리를 제시한 제도개혁안인 <경세유표>, 관리의 폭정을 비판하고 목민관의 지침을 밝힌<목민심서>, 형사 사건을 다루는 관리들의 자세에 대해 적고 있는 형법서인 <흠흠신서> 등 총 182책, 503권에 달하는 저술을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