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의 모자이크 – 황선미 지음, 남수 그림/창비 |
“난 그냥 나야. 모자이크 12.”
분단 사회를 살아가는 열두 살 인생 제나를 만나다
오늘날, 남북 분단이라는 깜깜한 현실 속에서 탈북 아동은 어떤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동화작가 황선미는 신작 『열두 살의 모자이크』를 통해 이제껏 사람들이 쉽게 답하지 못했던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다.
‘제3국 출생 북한 이탈 주민’이란 북한을 탈출한 여성이 중국·태국·베트남 등지에 머무르다 한국에 입국하는 과정에서 출산한 자녀를 가리킨다. 이들은 대부분 인신매매의 형태로 중국에 팔려 간 탈북 여성과 중국 남성 사이에서 출생해, 한국 입국 후에야 국적을 얻은 미성년자들이다. 이들은 한국 입국 과정에서 겪곤 하는 엄마와의 이별, 일반적인 가족 형태를 벗어나는 혈연관계, 학교에서의 따돌림과 부적응 문제 등을 겪으며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열두 살의 모자이크』의 주인공 제나 뒤를 따라다니는 현실의 그림자다.
제나의 삶은 마치 엉킨 실타래처럼 건드리기 힘든 문제로 가득하지만, 황선미 작가는 긴 세월에 걸친 자료 조사와 특유의 뛰어난 문장력으로 독자들에게 보편적인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온 세상이 자신을 버린 듯한 좌절감을 겪으면서도 끝내 가족과 친구, 이웃과 함께 희망을 찾아 나가는 제나의 모습은 색색의 모자이크처럼 다채롭고도 선명하게 빛난다.
제나가 겪는 사건과 감정에 따라 시시각각 농도를 달리하는 묘사는 남수 작가의 일러스트와 어우러져 훌륭한 문학 작품을 읽는 기쁨을 선사한다. 한국 사회에서 비가시화된 존재였던 탈북 아동이 당당하게 문학의 주인공으로 나서는 순간이다.
누더기 같은 셀로판지에서 색색이 빛나는 모자이크로…
예리한 현실 감각을 넘어 탁월한 문학적 감수성이 빛나는 동화
『열두 살의 모자이크』에는 독자의 눈길을 잡아끄는 명장면이 곳곳에 존재한다. 제나는 중국 하얼빈에서 벗어나기 위해 끝도 없는 옥수수밭을 하염없이 달리고, 결코 만나고 싶지 않았던 친아빠 장을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목격하고 돌처럼 굳어 버린다. 비 내리는 오후, “너도 울 줄 아니?”라는 속없는 질문을 듣고는 “넌, 내가 뭐, 괴물인 줄 알았니?” 하고 대답을 갚아 준다.
이처럼 작품 속에는 제나가 감내해야만 했던 결코 평범치 않은 사건들이 생생하게 묘사되는데, 특히 같은 반 아이들이 짓궂게 벌이는 “넌 뭐랄까…….”라는 문답 놀이는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정체화하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 측면을 날카롭게 포착한 장면이다.
‘북한 애’나 ‘도둑년’, 심지어 ‘누더기’로 불릴지언정 자신의 삶을 남에게 들키는 것은 죽을 만큼 싫어했던 제나의 이야기를, 이제는 독자들이 적극적으로 듣고 응답하기를 작가는 요청한다.
날카로운 현실 감각만이 이 동화를 빛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열두 살의 모자이크』는 어디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한 열두 살 소녀의 보편적인 감수성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승화한 작품이다. “돌덩이처럼 무거운 눈꺼풀이 꼭 슬픔 같다”며 외로움에 빠져 있던 제나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엄마와 동생의 손을 꼭 잡고서 환한 길거리를 마주하며, “왜 꼭 합주여야 하는데요?”라며 고립을 자처하던 제나가 결국에는 반 아이들과의 리코더 연습에 당당하게 합류한다.
무엇보다 이 동화의 하이라이트는 갖가지 셀로판지를 투과한 햇살이 알록달록한 하나의 빛으로 들어와 제나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장면이다. “빈집에 그래도 모자이크 빛이 머물러서 다행이다. 부드러운 게 하나라도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문장은 제나의 조각난 마음이 마지막에는 한데 모여 반짝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송제나를 위해서 딱 10초! 잘 봐 둬라.”
우리 곁의 선한 이웃과 올바른 마음을 발견하는 이야기
『열두 살의 모자이크』를 읽는 것은 주인공 제나의 내면을 탐색하는 것뿐 아니라,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는 선한 이웃을 마주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낯선 아이의 등장에 안절부절못하면서도 제나를 위해 편의를 봐 주는 콩 사장, “데헤헤헷!” 하고 짐짓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면서도 “아가야.” 하고 다정하게 제나를 불러 주는 콩 여사는 작품 속에서 가장 대표적인 선한 이웃이다.
제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환대의 음성을 낯선 이웃으로부터 전해 듣고, 비로소 세상 앞에 자신을 내보일 용기를 얻는다.
손쉬운 연민을 전시하기보다는 적당한 거리 유지를 통해 제나를 응원하는 다른 이웃들도 우리 아동문학이 늘 기다려 왔던 캐릭터들이라 반갑다.
제나가 쉽지만은 않은 학교생활에서 낙오해 버리지 않도록 곁을 살펴 주는 반장 경민이, 제나의 엄마가 남한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독려를 아끼지 않는 공부방 선생님, 그리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움츠러든 제나의 기를 살려 주기 위해 깜짝 이벤트를 벌이는 김 형사……. 이들이 제나에게 보인 행동은 위태로운 상황에 몰려 있는 타자를 마주쳤을 때 과연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를 취하는 것이 올바를지 성찰하게 한다.
‘나는 열두 살 제나 앞에서 어떤 이웃일 수 있을까?’ 『열두 살의 모자이크』의 마지막 장을 덮은 독자들 앞에 마지막으로 남겨지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