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날 팥죽을 먹는 것은 우리 민속이다.
이유는 귀신이 팥의 붉은색을 싫어하기 때문에 팥죽을 먹으면 액땜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조선 순조 때의 풍속을 적은 동국세시기에 설명이 나온다.
“동짓날은 작은 설(亞歲)라고 한다.
이날 팥죽을 쑤어 먹는데, 찹쌀가루를 쪄서 새알 모양으로 만든 떡을 죽 속에 넣는다. 이렇게 심(心)을 삼은 떡을 새알심이라고 한다.
이것에 꿀을 타서 시절음식으로 먹으며 제사에도 쓴다.
팥죽을 문에 뿌려 액을 막기도 한다. [형초세시기]에 나온 공공씨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 역귀가 되었다.
그 아들이 생전에 팥을 무서워했기에 동짓날 팥죽을 쑤어 물리치는 것이다.”라고 한다.
== 동지팥죽은 미신일까? 과학일까?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집집마다 팥죽을 뿌리는 풍속은 20세기 중후반까지 남아 있었다.
근대 초기, 일제 강점기 때 언론인이며 문인이었던 최영년이 쓴[해동죽지]를 보면 동짓날이면 팥죽을 쑤어 먹었울 뚠 아니라 집안의 방, 장독대, 헛간 등 집 구석구석에 팥죽을 놓아두고 문에 팥죽을 바르거나 사방에 팥죽을 뿌려 귀신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풍속이라고 했다.
조선 후기, 영조 때에는 팥죽을 뿌리는 것이 문제가 됐다. 영조실록에 그 기록이 보인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영조 임금이 “동짓날에 팥죽은 비록 양기가 되살아나는 것을 기원하는 뜻이라고는 하지만 귀신을 쫓으려고 문에다 팥죽을 뿌리는 공공씨의 이야기는 정도에 어긋나는 것이어서 그만 두라고 명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팥죽을 뿌리는 행위가 계속 된다고 하느 이후로는 문에다 팥죽 뿌리는 행동을 그만 두어 잘못된 풍속을 바로 잡으라”고 했다.
동짓날 팥죽 뿌리는 풍습이 도에 지나칠 정도였던 모양인데 영조가 왕명으로 금지시켰지만 후에도 계속된 것을 보면 왕명이 먹혀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 동지팥죽은 한중일 3국의 공동 풍속
중국에서는 고대에 동지 때 팥죽을 먹었다. 동짓날 팥죽을 먹는 기원을 형초세시기에서 찾고 있으니 당연히 옛날에는 종지팥죽을 먹었다. 지금도 중국 시골에서는 동짓날 만두를 빚고 팥죽을 먹는다.
일본에서는 소정월이라고 하는 정월 1우러 15일에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며 한 해의 건강을 위해 팥죽을 먹는 풍습이 있다. 15일은 정월 대보름달로 망죽, 즉 모치가유라고도 부른다.
팥이 가진 빨간 색과 벼농사 민족의 주술이 결합해 일찍부터 제사의 장에서 팥이 이용되어 왔다.
일본의 남북조 시대에 쓰여진 탑개초에는 중국의 전설에서 비롯됐다고 했는데, 형초세시기를 의미한다. 일본에서는 동지팥죽 대신 대보름 팥죽으로 발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