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걷는 여자들 – 로런 엘킨 지음, 홍한별 옮김/반비 |
걷는 행위는 오랜 세월 예찬되어왔다. 많은 사상가들과 작가들이 걷기가 지닌 다채로운 의미, 사색과 예술과 혁명을 가능하게 했던 이 행위가 인류에게 갖는 의미를 탐구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공공장소를 걷는 일은 대단히 성별화되어 있는 일이기도 했다. 여성이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고는 길을 자유롭게 다닐 수 없었던 시대, ‘거리의 여자(성매매 여성)’라는 낙인이 찍히던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그리 먼 과거가 아니다.
그런 금지나 낙인이 없는 지금도 홀로 걷기는 여성에게 안전하고 자유롭기만 한 일은 아니다. 거리를 걷는 여성들은 밤길의 잠재적인 성폭력의 위협에 시달리고, 대상화하는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 걷기의 역사와 의미를 총망라한 책 『걷기의 인문학』에서 리베카 솔닛도 이와 같은 지적을 했다. 솔닛은 이 책의 한 장을 할애해 걸을 수 있는 공공장소가 여성과 소수자에게 어떤 제약을 가하는지를 살핀다.
『도시를 걷는 여자들』은 리베카 솔닛의 이러한 작업에 발을 딛고서 이 주제를 더 깊고 넓게 파고든 책이다. 로런 엘킨은 여성이 도시에서 걸을 때 만나는 위험과 매혹을 탐구한다.
이 책의 원제는 ‘플라뇌즈(flâneuse)’다. 보들레르로 대표되는 근대의 도시 보행자, 천천히 걸으며 도시를 관찰하는 산보자를 뜻하는 말인 ‘플라뇌르(flaneur)’라는 남성형 명사를 여성형으로 바꾼 단어다.
단어의 성을 바꿈으로써 로런 엘킨은 이 남성형 명사를 둘러싸고 형성되어온 걷기의 서사를 전복한다. 여성은 어떻게 도시 환경에서 배제되어왔는가, 그럼에도 도시는 여성들에게 어떤 자유와 기쁨을 안겨주는가, 여성이 도시를 걷기 시작할 때 걷기라는 행위의 의미가 어떻게 뒤바뀌는가를 탐색한다.
엘킨은 분명히 존재했으나 지워져온 여성의 지성사와 문화사를 되찾기 위해 전 세계의 대도시를 두 발로 걷는다. 그리고 자신보다 앞서 뉴욕, 파리, 런던, 도쿄, 베네치아를 누비며 위반하고 창조했던 여성 예술가들을 만난다.
“도시의 창조적 잠재성과 걷기가 주는 해방 가능성에 긴밀하게 주파수가 맞추어진, 재능과 확신이 있는 여성”이라고 정의 내린 ‘플라뇌즈’의 초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조르주 상드, 버지니아 울프, 진 리스, 소피 칼, 아녜스 바르다 등의 삶과 작품을 통해 엘킨은 도시와 여성의 신산한 동시에 짜릿한 관계를 생생하고 다채롭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