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녘의 시인》
어느 바람 부는 저녁,
나는 길을 잃은 단어처럼
세상 끝 언저리를 걷는다.
뜻을 잃은 이름들 사이에서
의미 없는 웃음과
침묵보다 무거운 말들이
세월을 짓누른다.
무엇이 삶이냐 묻는 이에게
나는 대답 대신
구겨진 종이 위에
잉크 몇 방울을 흘린다.
고요한 새벽,
별빛도 잠든 그 시간에
나는 내 안의 어둠과 마주 앉아
끝내 쓸 수 없는 마지막 행을
한없이 되뇌인다.
살아있다는 것은
끝없이 되묻는 일,
누구도 다다르지 못한 진실 앞에서
무릎 꿇지 않고 서 있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