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슬프게 걸을 때도 있는 거지 – 박선아 지음/책읽는수요일 |
이웃한 모과나무를 함께 지켜보는 직장인의 짧은 점심 산책, 서랍 속에 묵혀두었던 선물을 꺼내 친구 집으로 향하는 갑작스러운 발걸음, 어렸을 때와 달리 마음을 단단히 여며야 떠날 수 있는 여행길, 외로운 날 둥그런 달을 보며 걷던 길, 빨래방 건조기에서 갓 꺼낸 따끈한 이불에 얼굴을 묻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빠가 매일 걷는 산책길을 따라 걷는 일, 외면하고 싶은 날 좋아하는 사람을 불러내 무작정 걸어보는 일.
『어른이 슬프게 걸을 때도 있는 거지』는 의식하지 못한 채 흘려보내는 시간에 일부러 빈칸을 만들고 그 시간을 채워가는 이야기이다. 한없이 사소할지 몰라도 한편으로 우주만큼 거대한 시간을 매일, 성실하게 걸었던 순간을 박선아 작가 특유의 담백하면서도 다정한 산문과 감각적인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리고 각 산책 코스마다 글의 말미에 그날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문장들을 다른 책에서 인용하여 실었는데, 이는 매일의 걸음에 또 다른 리듬을 부여한다.
저자는 그렇게 혼자, 때로는 좋아하는 사람이나 고양이를 쫓아 걷다 보면 잠시나마 슬픔을 의심할 수 있고, 잊어야 할 것들은 잊게 되고, 운이 좋으면 기억해야 할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고 고백한다. 그러고 나면 그날 하루는 무척 선명해지고, 또다시 내일을 걸어갈 힘을 얻게 된다고 말이다. 책과 함께 묶인 산책 노트는 매일 같이 걷고 그 시간을 기록해보자고 하는 작가의 다정한 권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