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 선다. 익숙하지만 낯선 얼굴이 비친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피부, 어딘가 무거운 눈빛, 그리고 결코 숨길 수 없는 고단함이 드리워진 입가의 주름까지. 이는 단지 외면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지나온 삶의 궤적, 나 자신이 만들어 낸 자화상이다.
어린 시절, 세상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의 꿈은 밝고 가벼웠으며, 그것을 이루는 일은 단지 시간 문제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이상보다 단단하고, 때로는 차갑다. 내가 그렸던 이상과 실제의 간극은 내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무엇을 위해 달려왔던가?”,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는가?”
삶을 살아가며 쌓아온 성취와 실패는 어쩌면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모습과 거리가 멀었다. 이룬 것들은 늘 부족하게 느껴졌고, 잃어버린 것들은 더 크게 다가왔다. 그렇게 나는 내 스스로에게 불만을 품으며 점점 더 높은 기준을 나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법을 잊어버렸던 것 같다.
내 안에는 울고 있는 나와 웃고 있는 내가 공존한다. 슬픔은 때로 너무도 크고 무겁게 느껴져 나를 짓누르지만, 그것 또한 나의 일부임을 부정할 수 없다. 누군가의 기대에 맞춰 살아온 시간이 길었던 만큼, 그 틀을 벗어나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거울 속 나에게 솔직히 말할 용기가 생겼다.
“괜찮아. 부족해도 괜찮아.”
나의 자화상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도, 나는 붓질을 이어가고 있다. 밝고 찬란한 색은 아니더라도, 그 속에는 내 고유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떤 이에게는 흐릿하거나 어둡게 보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그것이 진실이다. 그리고 그 진실 속에서 나는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으려 한다.
슬픈 자화상이기에 더욱 아름답다. 삶의 모순과 상처가 얽히고설킨 그 그림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것은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욱 인간적이고 진솔하다. 나는 이 자화상을 정성껏 그려 나갈 것이다. 내 안의 슬픔을 껴안으며, 그것이 나를 강하게 만드는 힘임을 믿으며.